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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 도시재생 이야기

웹진 Vol.58_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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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아름다운 사람들 -지역활성화와 도시재생의 핵심은 사람이다-

이영희(북구침산1동도시재생지원센터장)

  근자열원자래(近者說遠者來)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 말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그 모습을 보러 멀리 있는 사람들이 온다’는 뜻이다.


  도시재생 현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말의 의미가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도시재생사업은 지금 이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행복추구에 그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재생은 지금의 공동체를 잘 유지하여 사람의 변화를 통해 도시(마을)를 살리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사업이다. 그래서 주민참여와 주민주도성을 강조한다. 살고 있는 주민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살고 있는 주민들이 사업의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그 주도권이 행정에 더 가 있고, 주민협의체 구성이 일부 주민들 중심으로 구성되고, 어느 지역에서나 비슷한 프로그램들로 진행되며, 역량강화 단계를 거쳐 마을관리협동조합을 구성하는 식의 짜여진 매뉴얼과 전문성 · 사업성의 미비로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계속 거론되고 있다. 그럼에도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변화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보며, 지역 활성화와 사회혁신의 가능성을 또한 느낀다. 아마 이런 희망과 가능성이 현장에 계속 머물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재생 사업은 보통 4~5년 동안 추진된다. 이 기간 동안 현장에서는 도시재생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도시 재개발과 재생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해, 역량강화를 위해, 다양한 주민들의 발굴을 위해, 자립을 위한 기술 습득을 위해.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들 속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은 주민공모사업이다. 주민들이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의 예산을 가지고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사업의 전 과정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예산도 많아지지만 그 시간 속에 맛보게 되는 경험과 성과들도 축적되면서 마을 자립과 마을 자생의 토대를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초석이 된다. 회의를 통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행사를 준비하며 겪는 실패의 경험으로 하나의 사업을 잘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준비를 이해하며 문제해결능력과 위기대처능력, 민주적 의사결정과정 등 주민들은 성장의 변화를 겪게 된다. 이것이 주민역량강화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주민들은 ‘민원인’에서 마을의 ‘주인’ 된다.


  침산1동 주민들도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된 2019년부터 주민공모사업을 하고 있다. 3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 ‘깨끗하고 밝은 마을 만들기 운동’, 일명 ‘깨발마 운동’은 자랑할 만하다. 에너지 자립마을이었던 서울 산골마을의 견학이 그 시작이었다. 산골마을 옥상 곳곳에 놓여진 태양광 판넬보다 담배꽁초 하나 없는 마을에 모두들 놀라워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견학 후 주민들은 에너지 자립마을(에너지 자립마을 실현은 침산1동 도시재생의 주요사업 전략이다)이라는 거창한 구호보다 담배꽁초 하나 없는 깨끗한 마을이 도시재생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깨끗한 마을은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관리되는 마을이고, 관리된다는 것은 안전마을로 인식되어지기 때문이다.


  먼저 돌아다니는 쓰레기를 없애기로 했다. 매주 한 번 오후 2시와 오후 8시에 캠페인을 하고, 쓰레기를 치웠다. 어르신이 많은 마을이라 먼저 분리수거 방법부터 문전 배출하는 것까지 일일이 설명도 하고, 트럭을 타고 방송을 하기도 하며 그렇게 시작한 활동이 벌써 1년이 되었다. 지금은 ‘깨끗하고 밝은 마을만들기 운동’으로 확장되어 도시재생 사업지에서 침산1동 전역으로 침산1동 행정복지센터와 유관단체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 다음,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곳에 벤치가 있는 꽃밭을 만들었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몇몇 분들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진짜 벤치를 놓으니 쓰레기 무단 투기도 많이 줄어들었고, 높은 언덕길을 다니시는 어르신들이 잠시 쉴 수 있는 마을의 작은 쉼터가 되었다. 또한, 어두운 골목길과 오봉산 아래 등산로에 태양광가로등을 설치하였다. 오봉산 아래 마을이면서 공장이 많은 마을이다 보니 해가 저물고, 공장 문이 닫히면 인적이 끊어져 여성분들은 아예 밖을 나가지 않는 마을이었다. 하루 밤을 자고 나면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났더라...라는 소문으로 더 뒤숭숭해지는 마을에 도시재생으로 안전한 마을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안전한 건 사람들이 많이 다니도록 하는 것이고, 마을이 밝아지면 사람들이 다니지 않겠느냐며 주민공모사업으로 태양광가로등 설치를 신청하였다.


  태양광가로등 설치는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어두운 곳이라고 다 설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태양광이 잘 들어오는 곳인지 현장조사가 꼭 필요했다. 어떤 골목길이 어두운지 살펴보기 위해 밤늦게 모여 마을 골목길을 다녔고, 어디에 해가 잘 들어오는지 몇 번이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상황조사를 하고, 설치할 곳을 결정하였다. 설치할 곳에는 설치할 벽의 집주인과 인근 주민들에게 동의를 받아야 했고, 마을 입구 등산로에 설치하기 위해 구청 공원녹지과를 방문하는 등 몇 달에 걸쳐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해서 23곳에 89개의 태양광가로등을 설치하였다.


  처음 “우리가 한다고 달라지겠냐”는 자조 섞인 말도 있었지만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면서 마을이 많이 깨끗해지고 환해졌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함께 했던 주민들 스스로도 밝고 깨끗해진 골목길과 마을을 실감하고 있다. 몇 달에 걸친 회의, 현장조사, 주민설득과 동의, 준비사항을 일일이 체크하며 실행해 갔던 그 시간들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해 냈다는 뿌듯함과 보람 속에서 느리지만 마을과 함께 주민들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변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쇠퇴하고, 노후화된 물리적 환경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집수리, 골목길 정비, 도시가스설치, 안전시설 설치 등에서부터 복합커뮤니센터 등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주요 사업으로 설정된다.
  주민들 또한 도로를 닦고, 건물이 올라가야 마을이 변한다고 느낀다.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편리하고 안전하게 주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쩌면 도시재생이 아니어도 지자체와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도시재생에서 공간은 수단이다. 만들어진 공간에 주민들은 모여서 교류하고, 얘기를 나누며 마을을 위해 무언가를 작당하는 장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자발적인 움직임과 협력·연대는 튼튼한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사회적자본이 되어 마을과 지역을 활성화 시킬 것이다.


  거기에 지금도 고군분투하는 도시재생지역의 주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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