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라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전염병을 거쳐오며 감염과 확산을 막기 위한 단계를 지나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살기 위한 준비, 코로나 이후를 위한 다양한 대안과 아이디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고민되고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자며 뉴노멀(New Normal), 뉴리얼리티(New Reality)가 핫이슈가 되었다. 사람들은 거주밀도를 낮추기 위해 큰 평수의 아파트를 선호하며, 대도시보다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중소도시로의 선호도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한 목소리로 예언을 했지만, 그 예언은 현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한 높은 밀도의 위험을 피해 서울이나 뉴욕, 도쿄 등 대도시를 떠나겠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도시와 도시공간이 변해야 한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가 시작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이제까지 생활이 되어 온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라지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바꿀 새로운 사회문화가 될 것이라는 분석은 굳이 이런 저런 전문가들이 아니어도 이 팬더믹을 함께 겪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사회적 거리와 전염병이 던지는 문제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답을 준비해야 하는 분야는 아무래도 건축이 될 것이다.
건축의 본질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며, 건축 설계를 하는 사람으로서 전염병의 시대가 던지는 ‘사이. 틈, 거리’는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더욱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거리 두기처럼 도시 속에서도 공간 두기는 도시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문화적 상황으로 인해서 건축공간에 있어서, 특히 공공 건축물에 있어서의 공공의 개념, 공용의 의미를 갖는 서비스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어느 때보다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도시는 공공공간을 통해 시민들에게 다양한 차원의 도시적 경험을 서비스한다. 예전에는 공공건축물도 다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건축 이외의 공간도 공원과 길 등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도시, 도시의 문화가 다양해짐에 따라 도시의 공공공간도 다면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이 시행되며 도시를, 개발이 아닌 재생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이후 도시 내의 다양한 크기의 공원과, 마을길, 특히 도심 속 이웃의 경계들이 흐려지며 커뮤니티가 복원되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자체마다 다양하게 지어지고 있는 도시 내 공공건축, 공공공간 또한 기능을 위주로 한 행정서비스, 교육서비스 등 목표지향적 공간에서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대안적 커뮤니티의 장으로서의 역할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공공건축이 가진 내, 외부 공간을 새로운 개념의 공공을 위한 공용공간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최근 지어지고 있는 공공건축물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좁은 도로, 골목길, 마을길 등 도시의 이면도로에 접하여 지어지는 공공건축물의 1층 공간을 주민 소통의 개념을 가진 공공의 열린 공간으로 내어주는 계획은 좁은 도로의 시각적 확장의 장점과 함께 공공건축물의 도시 내 서비스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위한 가장 돋보이는 공간 계획이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 설계공모로 참여한 청소년문화의집이 최근 준공되었다. 현장 조사를 하는 동안 적지 않은 수의 젊은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와 현장 주변 도로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통학로에 면해 지어지는 건축물이라 좁은 도로를 통학로, 진입도로로 함께 나눠 써야 하는 곳이였다. 그래서 한낮 아이들을 기다리는 잠시라도 햇빛을,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면 잘 이용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로변 1층 한쪽에 만든 작은 맘스카페는 열린 공공건축 공간으로 준공 후 시민들과 잘 소통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접근성, 인지성, 사용성이 우선되어 늘 1층 도로에 면하여 가장 큰 면적으로 자리 잡고 있던 행정복지센터, 주민센터의 업무공간은 최근 많은 경우 2층, 3층 등 상층으로 옮겨지고, 접근이 가장 좋은 1층 공간은 어울림공간, 마주침공간, 마을카페, 육아나눔터 등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지어지고 있다.
요즘, 도시의 크기나 입지 조건 등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문을 열고, 닫는 건축공간은 카페다. 코로나로 인해 국내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보다, 이전 관광지, 문화재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관광이 가족중심, 친구들, 혹은 나홀로 여행 등 여행의 규모가 작아져서인지, 사람들의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기대, 감수성이 달라져서인지 각 도시마다 카페투어가 관광의 주 아이템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선하면서도 낯설다. 더 이상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닌 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를 채워주는 작은 도시 광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골목 카페의 역할을 하는 공간을 그 지역의 특징이나 컨셉을 담은 공간으로 공공건축물의 1층에 설치한다면 새로운 소통의 공간으로 경계을 허문 공공건축으로써 주민 서비스 공간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건축법에 ‘공개공지’라는 개념이 있다. 도심에서 건물을 짓는 건축주는 땅의 일부를 대중에게 휴게공간, 조경공간 등으로 제공하며, 용적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대규모 건축물의 경우 용적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므로, 개발업자들은 도시환경을 쾌적하게 조성하고 가로변 시민들의 휴게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한 당초의 취지와는 상관없이 전체 부지에서 가장 쓸모없는 공간을 공개공지로 내어주고 용적율의 혜택을 받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공개공지 설치의 규정도 당초에 맞게 적용되어야 하지만, 공공건축물의 개방, 공공건축물의 공공성 증대등을 위해서는 공개공지와 같은 ‘공개공간’의 개념도 필요하지 않을까?
공개공지가 가장 직관적인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물론 법의 취지에 맞는 공개공지가 확보되었을 경우) 평가를 받는 것과 같이 ‘공개공간’ 또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공공간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공공건축물이 공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쓰여지고, 개방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관리의 문제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공공장소로 간주하는 공원, 공공건축물들은 대부분의 경우 ‘관리’라는 문제를 만나 방문, 접근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개방에 따른 안전의 문제, 관리의 문제로 인해 폐쇄를 결정한 공공건축물의 가장 대표적인 최근의 예는 뉴욕의 ‘베슬’이라는 건축물이다. 2019년 오픈한 뉴욕의 베슬은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공공공간이다.
뉴욕 허드슨 야드는 맨해턴 서쪽 허드슨 강변의 낡은 철도역과 주차장, 공터부지를 재개발한 주상복합단지로 초호화 아파트와 호텔, 명품쇼핑몰과 레스토랑 복합예술센터들이 들어선 대규모 개발지역이다. 이곳에 솔방울모양 (혹은 벌집모양)의 멋진 전망대 건축물은 계단으로만 이어진 일명 ‘무한의 계단’으로 그 획기적 아이디어의 멋진 외관의 건축물은 뉴욕의 새로운 상징이 될 것이라 일컬어졌다.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150개의 계단, 총 2,500개의 층계, 총길이 1.6km의 끝없이 연결된 거대한 수직 산책길. 16층 정도의 총 45m 높이로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고 뉴욕의 밤과 낮을 바라보는 뷰포인트였던 베슬에 대한 논쟁의 시작은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베슬을 공공재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견의 대립이 미디어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였고, 결국은 이 멋진 공공건축물을 삶의 마지막 장소로 선택하여 투신하는 자살자들이 생기면서 관리의 문제, 안전의 문제가 논란이 되며 결국 폐쇄를 결정하고 말았다.
공공건축물과 사람들의 일상은 이렇게 골목 안 작은 맘스카페에서부터 뉴욕 허드슨 강변 대규모 전망대까지 ‘공간’ ‘건축물’ ‘도시’라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사람들과 만난다.
전염병 시대의 사회적 거리두기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으로 예의와 배려가 흐르는 것처럼, 도시 안에서 건물과 건물, 사람과 건물 사이, 길과 집 사이에 비워진 틈으로는 바람과 빛이 흐르고, 정서가 흐르는 중요한 공간이다. 도시와 건축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도시재생도 도시를 건물로 아름답게 채우는 일이 아니라, 도시 속에서 사람을 위한 틈, 문화를 담을 틈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 일에 가장 앞에는 공공건축물이 서야하지 않을까
다양한 공공공간의 잠재성을 찾아내고 사람들과 커뮤니티가 요구하는 니즈를 수용하여 적절하게 변신할 때 바람직한 공공공간의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전염병이 바꾸는 세계사의 큰 경험은 아직 해보지 못했지만, 전염병이 만들고 있는 새로운 문화를 흥미롭게 목격하며, 아름다운 계절을 잃어버리고 사는 안타까운 2021년 가을에 사람사이 거리두기에 담긴 배려와 도시의 틈이 만드는 삶의 여유 공간, 도시를 향해 활짝 열린 아름다운 공공건축물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