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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 도시재생 이야기

웹진 Vol.61_20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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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골목공간실험 = ∫ f(키맨)+f(디자인) + ∑ (절박함+봉사) ± f(예산)

최이규(계명대학교 교수)

<조야동 주민쉼터정원을 위한 학생들의 다양한 계획안>

출처 : 직접작성



  몇 해 전, 연구실 학생과 일과 후 가볍게 맥주 한잔 나누는 자리였다. 지역 이곳저곳에서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 관련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친구였는데, 대구시 라운드테이블 행사에 갔던 이야기를 꺼냈다.

   “뭐, 별거 있드나?”

   “통장님 한 분이 인상적이었어요. 마을에 노인들을 위한 쉼터가 필요하다 시면서 눈물까지 보이시는 거예요. 교수님, 혹시 시간 되시면 저희가 어떻게 좀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그래? 그럼 일단 현장에 가볼까?”


  딱히 대책은 없었지만, 약속을 잡고 북구 조야동 김태임 통장님을 만났다. 부족한 깜냥이나마 우리 나름 드릴 수 있는 조언이나 계획안이라도 마련하기 위해서다. 대략적인 구상안이라도 만들어두면 향후 펀딩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 후, 학생들과 마을을 답사하고, 주민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수성고량주 사장님께서 학생들에게 고량주 맛도 보여주시고... 한 학기 동안 설계수업을 통해 작성한 결과물을 발표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2학년 첫 설계스튜디오여서 작업의 수준은 높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학생들도 매우 의욕적이었다. 커미션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현실의 장소에서 현실적 문제들을 다루면서 직접 클라이언트에게 PT한다는 사실에 자극이 됐나 보다. 개인 발표를 통해 스무 가지 정도의 대안을 제시했다. 작은 공간에 이렇게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주민들도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학생들의 떨리고 초롱초롱한 눈빛이 고맙고 감동스러웠다. 누군가 우리 마을을 위해서 몇 달 동안 고민해왔다는 사실. 괜찮은 느낌이다. 어르신들도 적극적으로 각자 의견을 피력하셨고, 이어진 다과 자리에서도 진지한 질문과 토론이 몇 시간 동안 계속됐다. 개인적으로도 무척 신선했던 게, 그동안 뻔한 요식적 행사들에 진력나던 차였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당해에 대구시 교육청소년과에서 진행하는 대학리빙랩 사업에 선정되었다. 충분치는 않지만 뭔가 해 볼 수 있는 시드머니가 생긴 셈이다. 주민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예산 상황을 반영하여 실질적인 편의 위주로 공간과 시설을 디자인했다. 통장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연말에 마을 어른들께 계란을 한판씩 드린다고. 계란을 찬으로 사드시기도 힘든 분들이 많은 까닭이다. 워크숍과 단톡방에서 주민들에게 필요한 시설을 조사했는데, 방앗간이 1순위였다. 텃밭에서 기른 고추 등을 빻아서 김치나 장을 담그기 위해서다. 우리가 방앗간을 지어드릴 순 없지만, 고추를 말리고 함께 김장하는 장소는 쉼터로 가능했다. 인근 3공단과 가까운 탓에 큰 트럭들이 통행하느라 골목길이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뜻밖에 지역 행정으로부터 도움도 받게 됐다. 배광식 북구청장님과 면담시간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해 주셨고, 지역 의회에서도 물심양면 고마운 도움을 주셨다. 우리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운동시설이나 재활용 포장재, 청소 차량과 인력을 지원해 주신 탓에 쉼터 정원이 조금씩 골격을 갖추어갔다. 우선 현장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는 게 급선무였다. 양이 너무 많아 수작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민분들이 먼저 나서시는 탓에 학생 봉사자들과 힘을 합쳐 우선 청소를 하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시작된 작업은 점심때까지 계속됐다. 도시재생이나 커뮤니티 사업에서 단체 청소 과정을 중시하는데, 모든 공간 기반 프로젝트의 시발점이기도 하고, 자발적 참여 의지를 확인하는 절차임과 동시에, 더럽고 싫은 일을 함께 함으로써 단합력을 높이고, 현장의 상황을 몸소 체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결국 25t 덤프트럭 몇 대와 포클레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날 오전의 땀이 있었기에 주민들 각자가 내 공간이라는 주인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믿는다. 


  엄석만 (전)서구도시재생지원센터장에 의하면, 커뮤니티 사업이 복제되기 어려운 3가지 요인으로 사람, 과정, 이야기를 들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에 있어 주민이란 결코 관념적 그룹이 아니다. 주민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다. 단순히 수동적 참여만 하는 주민만으로는 어떠한 의미 있는 사업도 끌어갈 수 없다. 통장님과 같은 키맨(keyman), 그리고 핵심주민그룹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예산이 차고 넘치는데도 의미 있는 성과를 끌어내지 못하거나 사업 자체가 소멸해 버린 경우를 수없이 봐왔다. 또한 주민들과 학생들이 시너지로 만들어낸 에너지, 희생정신, 디자인 요소라는 복잡한 과정과 극복의 스토리라는 함수가 작동하지 못한 탓이다. 예산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변수인 당사자들의 절박함을 상쇄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도시가 작동하려면 익명성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제 과거 농업사회와 같이 긴밀하고 간섭이 심한 커뮤니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개개인의 빈번한 이동과 가족 구조의 급격한 변화라는 사회적 상황에서, 나답게 살 수 있고 나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성을 기본 전제로 한 커뮤니티 사업이 필요하다. 마지못해 형식적인 절차를 통해 도출된 사업, 지역 안배식 사업,,, 아무리 지원해 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아이디어 기반, 디자인 기반, 핵심인물 기반의 프로젝트 선정과 지원 과정이 필요하다. 방천골목오페라축제, 비산동 골목정원, 인동촌 골목사업, 아트다이닝 등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경험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키맨, 수준 높은 디자인, 주민들의 절박함과 외부(학생, 행정)의 봉사정신과 기여의식이 커뮤니티 사업의 세 가지 함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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