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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Vol.58_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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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사례

부산 영도 ‘깡깡이마을’ 어디예요?

대구 도시재생 기자단

가을 여행하기 좋은 날.

  대구에서 부산까지 열차로 한 시간. 내륙 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도심과 가까운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

  부산역에 도착해 탁 트인 바다를 보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바쁜 사람들의 걸음과 여행 가방을 든 관광객들의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부산역에서 남포동 방향으로 택시를 타고 “깡깡이마을 가주세요”라고 하자 주소를 말하라고 한다. 순간 기자는 ‘깡깡이마을을 모르시나?’라고 혼자 생각했다.

  택시를 타고 높은 건물들이 보이는 중앙동, 광복동을 지나 아파트를 끼고 있는 소방도로에 ‘깡깡이 예술마을’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매표소로 보이는 작은 컨테이너 사무실 앞에 내렸다. 부산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인 깡깡이마을은 일제 강점기 때 육지와 가까운 작은 섬을 매립해 만든 마을이다. ‘깡깡이 예술마을’은 부산 자갈치시장 건너편 영도대교, 남항대교와 맞닿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수리·조선 마을이다.


 
<깡깡이마을 지도, 사진출처 : 홈페이지 참조> , <매표소 내부, 사진출처 : 직접 촬영>

 

  2층짜리 컨테이너 매표소로 들어갔다. 며칠 전 인터넷으로 예약해 둔 해상+마을 투어 비용을 지불하고 선박 탑승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건물 외벽에 벽화가 보여서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약 시간 10분 전에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선박에 올랐다. 이 20인승 배는 승무원을 제외하고 12~14명 정도의 정원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기자가 예약한 시간에는 6명이 탔다. 배가 출발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깡깡이 예술마을’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배가 지나는 곳에 대한 안내방송이 시작됐다. 


  멀리서 ‘깡깡깡깡~’ ‘까~아앙 깡깡’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육지에서만 살았던 기자는 처음 듣는 소리가 바다를 향해 울리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아!! 이게 ‘깡깡이’라는 마을 이름을 만들어 준 그 소리구나, 혼자 짐작했다. 


 

벽화 작업이 된 옛 선박 수리 공장 / ‘깡깡이 예술마을’ 해상 투어 선박


 

바다에서 본 ‘깡깡이마을’ 조형물 / 수리 중인 선박들

사진출처 : 이혜정 기자 직접 촬영

  

  해상 투어를 마치고 마을 투어가 시작됐다. 중절모와 노란색 마을 해설사 조끼를 입은 노신사께서 참가자들 앞에 섰다.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해설사 교육을 받고 선발되셨다 한다. 해상 투어 때 탑승했던 배 바로 옆에 같은 크기의 선박이 체험관으로 쓰이고 있었다. 마을 투어 참가자들도 다 같이 체험 선박에 탑승해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마을의 유래와 역사, 생활상 등 전반적인 내용을 고령의 해설사는 삶의 경험과 위트를 섞어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다.


  흡사 시골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그 시대를 상상할 수도 없는 우리는 그저 짧은 감탄사를 뱉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깡깡이’라는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수많은 망치 사진을 볼 수 있다. 깡깡이 작업은 배의 노후를 방지하기 위해 2년 정도에 한 번씩 배 밑창이나 표면에 붙은 조개껍데기나 녹을 떨어내는 일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을 ‘깡깡이 아지매’라고 불렀다 한다. 기자는 의문이 생겼다. ‘깡깡이 아저씨는 없는 건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부산 영도대교를 중심으로 피난민들이 모여들었다. 전쟁으로 과부가 된 젊은 여성들, 특히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이 자식을 키우고 먹고살기 위해 깡깡이질을 시작했다. 그네들에게는 배의 녹을 떨어내는 단순한 일밖에는 선택권이 없었다. 깡깡이 아지매들은 360톤, 약 5m 높이의 선박 벽에 매달려 망치를 들고 온종일 ‘깡깡’거리며 뱃전의 철판을 두드렸다. 당시에는 안전 장비라고는 그네처럼 생긴 작업대만 있었고 안전모도, 생명줄도 없었다. 


  허술한 작업대에서 맨손으로 작업하다 떨어져 치명상을 입거나, 잠시만 들어도 고막이 아플 정도의 ‘깡깡깡’ 소리를 오래 들어 청력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체험 선박에서 깡깡이 체험  

마을 해설사의 ‘깡깡이마을’ 안내 


  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해설사는 투어 참가자들에게 깡깡이마을에 대해 ‘지금은 아무것도 볼 게 없는 마을’이라 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강조하여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먹고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우리 어머니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조선 산업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바로 그 이유 하나 때문에라도 이곳 ‘깡깡이 예술마을’은 보존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2017년 부산 영도구 남항동 깡깡이마을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 발간되었다.


  

깡깡이마을해설 - 이혜정 기자 직접 촬영


  

‘깡깡이 아지매’ 선박 수리 모습 사진, 그림 - 이혜정 기자 직접 촬영


 책 제목은 '깡깡이마을 100년의 울림·역사' 이 책은 깡깡이마을사업단에서 발간한 것으로 깡깡이마을의 역사, 산업, 생활을 3부작으로 정리하고 있다.

   

  한 시간 정도의 마을 투어를 마친 뒤 ‘깡깡이 생활문화센터’에 들러 깡깡이마을 관련 콘텐츠를 둘러보고 1층 마을다방에서 제공해 주시는 음료수를 마셨다.

  화창한 날씨에 햇볕도 없고 마을 투어를 하기에 좋은 날씨였지만 한 시간 남짓 이어진 마을 해설에 참가자들은 목이 탔는지 음료수를 단숨에 들이켰다. 

  참가자들은 해설사의 마무리 인사에 답례로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마을 투어를 마치며, 부산역에서 ‘깡깡이마을’ 주소를 묻던 기사님의 목소리와 ‘깡깡이 아지매’들의 노고를 잊지 말라던 마을 해설사의 당부가 잊히지 않았다. 

  깡깡이마을은 벌써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부산의 택시 기사님들도 모른다면 일반 시민들에게는 더욱 알려지지 않은 곳일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다음 세대인 우리들이 ‘깡깡이마을’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깡깡이 아지매들의 노고를 기억하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깡깡이마을 여행은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깡깡깡’ 그 투박한 소리가 내 마음속에 여전히 울리고 있다. 

  

참고 문헌 

* http://kangkangee.com/

* 김현주, 「영도 깡깡이마을의 역사를 한 눈에...‘깡깡이마을 100년의 울림.역사’출간」, 『국제신문』, 2017.05.30.

* 위키백과: 깡깡이예술마을

* 사진자료,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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