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 항아리가 도시를 밝게 비추다: 대구은행 제2본점 ]
“커다란 달이 대구 칠성동 일대를 비추고 있다.” 이는 대구은행 제2본점의 야경이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 그 건물을 달에 비유한 표현이다. 이 커다란 달은 도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을까?
◆ 섬유 산업의 메카였던 침산동과 칠성동 … 산업 구조의 변화로 쇠퇴하다
하나의 도시는 사회·문화적인 요소와 경제적인 요소로 인해 부흥하기도 하고 산업 구조의 변화, 인구의 감소 등으로 인해 침체하기도 한다. 대구시의 침산동과 칠성동은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칠성동과 침산동 일대는 1960~70년대 경제 개발을 견인한 섬유 산업의 메카였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견인한 지역 중 하나로, 대구의 산업화를 이끈 핵심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북구는 대구의 심장 역할을 하게 되었고, 섬유 산업을 통해 꾸준히 발전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합성 직물의 등장, 세계 석유파동, 수출의 감소 등의 이유로 섬유 산업은 쇠퇴하게 되었고 북구에 들어섰던 섬유 관련 기업과 공장 단지들도 하나둘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북구 일대는 이러한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쇠퇴하였고, 비어있는 공장 부지를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를 짊어지게 되었다.
◆ 다시 생기를 되찾기 시작한 침산동과 칠성동
섬유 산업의 쇠퇴와 함께 침체되었던 침산동, 칠성동 일대에 최근 재생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남침산네거리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이 문화 복합 공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남침산네거리 북동쪽과 북서쪽 일대는 각각 대구의 섬유 산업을 이끌었던 제일모직과 대한방직의 부지였다. 이 부지들은 해당 공장이 이전하면서 공터로 남아있었지만 조금씩 새로운 장소로 탈바꿈하였다. 제일모직 부지에는 대구오페라하우스와 삼성창조경제단지가 들어섰고, 대한방직 부지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이마트, 대구은행 제2본점 등이 들어서면서 주거, 문화, 경제의 요지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북구청 등 주변의 공공 기관, 대구 도시철도 3호선 북구청역의 개통, DGB 파크를 비롯한 복합 스포츠 타운, 폐공장을 리뉴얼하여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2garden(투가든), 빌리웍스 등이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되었고, 자연스레 동네에 생기가 돌았다. 이러한 요소 가운데 이 글에서는 대한방직 부지에 들어선 대구은행 제2본점의 탄생으로 인해 일대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 사기업 사옥 면적의 절반을 시민들을 위해 개방 … 그 이유는?
한 기업의 사옥 설계는 그 건물의 건축주가 되는 기업의 철학으로부터 출발한다. 대구은행 제2본점의 건축주인 대구은행은 ‘지속 가능한 경영’, ‘소통과 상생’, ‘지역 사회 공헌과 상생’을 철학과 모토,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대구은행 제2본점의 설계는 그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구은행은 건물 설계를 위해 크게 두 가지의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하나는 기존 대구은행 본점의 부족한 업무 공간을 확충할 수 있는 기능적 요구, 또 다른 하나는 기업의 가치, 철학, 역사,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건물을 구현해내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적극적인 지역 주민과의 소통 공간 및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의 제공, 효율적이면서 직원들의 능률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의 구현, 지속 가능한 친환경 건축물 조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로 적극적인 지역 주민과의 소통 공간 및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의 제공이다.
대구은행이 새로운 사옥을 중축하는데 이처럼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과 상생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기업과 장소의 역사성과 관련이 있다. 대구은행 제2본점 사옥 부지가 위치한 칠성동은 북두칠성 모양의 고인돌 7기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칠성동(七星洞)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거대한 고인돌은 묘지 혹은 종교 제의 등을 위한 용도이며, 이는 해당 장소가 다양한 공동체적 행사를 통해 부족 간 소통과 화합을 이루는 상징적 공간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대구는 고인돌의 도시에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초고속 성장을 이끈 섬유의 도시가 되었고, 현재는 공공, 주거, 문화,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처럼 칠성동은 예로부터 소통과 화합을 추구하는 상생의 공간이었고, 대구의 산업화를 이끈 중요한 장소이며 오늘날에는 다양한 분야의 산업을 아우르는 장소성을 지닌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구은행 제2본점의 설계는 해당 부지가 속해있는 공간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존중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또한 대구은행 제2본점 신축 기념 인터뷰에서 박인규 전(前) DGB 대구은행장은 “DGB를 이용해 준 지역민의 뜨거운 성원으로 성장해온 DGB의 본분을 다하고자 그에 대한 감사와 보답의 의미로 업무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드리고자 생각한 것입니다. (이 공간이) 문화, 체육 시설이 있는 복합금융 문화 공간이자 누구나 자유롭게 거닐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심 속 작은 공원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이렇듯 대구은행 제2본점은 1967년에 대구은행이 설립된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되었던 대구 시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장소의 지역성 및 역사성 그리고 기업의 역사, 이 두 가지 요소가 대구은행이 제2본점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림건축은 대구은행의 요구를 어떠한 방법으로 구현했을까?
◆ 시민들과의 소통을 위한 대구은행 제2본점의 노력
☑ 사방에서 접근이 가능한 길과 공간으로 질서를 구축하여 그 주변으로 각 프로그램을 독립적으로 배치
☑ 동, 서, 남, 북 4개의 출입구를 통해 DGB 라운지에서 만나게 되는 구조
⇒ 쉽고 개방된 접근성을 통해 기업의 소통 의지 실현
☑ 상층부 5층~10층은 업무 시설, 저층부 1층~4층은 주민들을 위한 공공 문화 공간으로 분리 (※1층: 갤러리, 북 카페, 은행, DGB 라운지 / 2~3층 : 대강당 / 4층 : 문화 센터, 다목적 홀 / 5층~10층 : 업무 시설)
☑ 비오톱 공간과 옥상 정원을 조성하여 주민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개방
☑ DGB 라운지를 통해 주민들의 시각, 청각, 후각을 공감각적으로 자극
☑ 대구은행 제2본점 디자인 방향
◆ 대구은행 제2본점의 출현이 도시를 어떻게 바꿨을까?
대구은행 제2본점이 들어서기 전의 해당 부지는 한낱 공터에 불과했다. 정방형의 부지는 아파트 단지와 마트 주차장 사이에서 회색 가림막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가림막에는 불법 전단지와 현수막이 가득 붙어 도시 경관을 해치고 있었다. 주거 단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공터가 주는 삭막한 분위기를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2012년, 해당 부지에 대구은행 제2본점의 신축이 확정되고, 2016년 완공된 뒤 이 지역의 분위기는 한껏 생기로워졌다. 사옥 내 오디토리엄(Auditorium)과 실내 체육관에서는 전 연령을 아우르는 행사가 진행되어 다양한 연령층이 이곳을 찾게 되었고, 갤러리의 전시회와 녹지 공간의 조형물 등은 시민들의 미적 감각을 자극하였다. 북 카페의 커피 향은 후각을, 연못의 물소리와 라운지의 피아노 소리는 청각을, 웅장한 큐브형 사옥의 외관과 녹지 공간의 자연은 시각을 자극하면서 대구은행 제2본점 일대는 시민들이 다시 찾아오고 싶게 만드는 공간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의 랜드마크는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대구은행 제2본점 일대는 대구 시민들의 약속 장소가 되었고, 애완견 산책로, 어린이들의 자전거, 킥보드 도로, 주민들의 산책로가 되었다. 시민들이 함께 모여 소통하고 상생하는 공간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산업 구조의 변화나 랜드마크의 출현으로 변화한 또 다른 도시
대구은행 제2본점은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탄생한 하나의 랜드마크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산업 구조의 변화나 랜드마크의 탄생으로 인해 도시가 다시 생기를 찾게 된 사례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대표적인 해외 사례로는 오스트리아 빈의 가소메터 시티가 있다. 가소메터 시티의 네 개의 가스 저장소는 19세기~20세기 빈 전역에 가스를 공급하는 중요한 발전소였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과 주 연료의 변화로 인해 4동의 가스 저장소는 가동이 중단되고 애물단지로 남게 되었다. 시민들은 도시의 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를 요구했지만 시 당국의 책임자는 시민들을 설득하여 해당 건물을 보존키로 하였다. 가스 저장소는 가동 중단 3년 뒤 리모델링을 통해 주거·문화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하나의 랜드마크가 된 옛 가스 저장소는 해당 지역의 주거 문제와 도시 쇠퇴 현상을 해결하는 데 큰 이바지를 하였고, 하루에 만여 명이 방문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국내 사례로는 서울의 창신·숭인 지역을 예로 들 수 있다. 대구의 침산동 및 칠성동이 섬유 산업의 메카였다면 서울의 창신동 및 숭인동은 봉제 산업의 메카였다. 하지만 봉제 산업이 쇠퇴하면서 해당 지역 경제도 쇠퇴하게 되었고 도시도 함께 낙후되었다. 하지만 창신·숭인 지역이 서울형 도시재생 제1호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어두운 골목길과 경사 높은 계단길을 재정비하였고, 지역의 역사성 및 지역성과 봉제 산업의 메카라는 콘텐츠를 살려 ‘채석장 전망대’, ‘백남준 기념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등을 설립하였다. 이로 인해 창신·숭인 지역의 방문자도 많아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침체되었던 도시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 기업과 랜드마크. 도시재생에 선한 영향력을 불어넣다
한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책이나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중요하지만 부(富)의 선한 영향력도 큰 영향을 미친다. 뉴욕의 사례를 살펴보자. 현재 뉴욕은 문화의 도시,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뉴욕의 경제적 역할이 쇠퇴하면서 뉴욕이라는 도시는 사람들이 살고 싶지 않은 도시로 전락하기도 했다. 뉴욕이 지금처럼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도시 브랜딩(I♥NY), 뉴욕 시민들의 사랑, 다분야 전문가들의 빈번한 회의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부의 선한 영향력 또한 그러한 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들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정기 후원과 같은 문화 예술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가 없었더라면, ‘문화 예술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진 오늘날의 뉴욕은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구은행 제2본점의 경우에도 수십 년 동안 대구은행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대구 시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사옥 면적의 절반을 시민들을 위한 장소로 내어주는 큰 결단을 보여주었다. 즉 부의 선한 영향력이 있었기에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고, 기업과 시민이 상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도시재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지만,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기업 또는 랜드마크의 선한 영향력, 지역성의 존중, 시민들과 상생하기 위한 노력 등도 중요하다. 도시재생 사업이 이들을 잘 아우른다면 더 나은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 윤성철, 『공간의 울림 : 대구은행 제2본점 디자인 & 스토리북 :DGB컬처플랫폼 design & story book』, 아이디 도서출판, 2016.
2. 최지희, 「<건축트렌드> 대구은행 제2본점」, 『건설경제』, 2017.03.20.
3.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2016 대한민국 녹색 건축대전 수상작품집』, 서울ulk, 2016.
4. 백예리, 「‘가소메터 시티’에서 배우는 도시재생 세 가지 팁 버려진 가스저장소가 2000명 사는 ‘도심 속 신도시’로」, 『이코노미조선』, 2018.10.29.
5. 최현재, 「철거 대신 재생으로…서울 창신·숭인의 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