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의 대표 예술 작품인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일본의 세토 내해에는 ‘올곧고 바른 섬’이라는 뜻을 가진 ‘나오시마’가 있다. 이곳은 일본의 지중해라 불리기도 하고, 예술의 섬이라고도 불린다. 또 나오시마는 꼭 여행을 가 봐야 할 ‘세계 7대 명소’로 선정이 되며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로도 손꼽히는 곳이다. 이처럼 오늘날 나오시마는 활력이 가득한 섬이지만, 이곳에도 어두운 과거는 있었다.
1971년 나오시마에는 나오시마 제련소가 들어서며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제련소에서는 끊임없이 매연과 유독 가스가 나왔다. 바닷물은 오염이 되고 섬의 나무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1980년대에는 제련소가 문을 닫아버렸고 나오시마 버려진 섬으로 전락하였다. 더군다나 거주 인구도 계속 줄어들어 섬에는 3,100여 명의 노인들만 남게 되었다.
이렇게 황폐화된 섬을 바꾸려는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베네세 홀딩스의 회장인 후쿠타케 소이치로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 섬에 어린이 국제 캠프장을 세우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후쿠타케 회장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그 대상을 ‘어린이’에서 ‘노인’으로 바꾸어 ‘노인들만 남아 있는 나오시마에 노인의 웃음이 넘치는 장소를 만들고, 예술을 통해 섬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라고 생각했고 이를 곧 실천에 옮겼다. 황폐해진 섬에 ‘예술’을 접목하여 안도 다다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 나오시마 프로젝트
안도 다다오는 최대한 기존의 나오시마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에 어우러지는 디자인을 추구하였다. 그래서 산의 능선을 그대로 살려 지하에 미술관과 호텔을 건축하였다. 이것이 바로 1992년에 문을 연 베네세 하우스이다. 이곳은 미술관, 호텔,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가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또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미술관과 달리 숙박도 가능하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밤을 보내며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아울러 모노레일을 타고 산등성이에 있는 별관 숙소로 이동을 하면, 자연과 건축물이 어우러지는 경관을 볼 수 있다.
<땅 속에 숨은 지추 미술관>,
<이우환 미술관에 전시 중인 작품 ‘침묵의 방’>,
베네세 하우스에 이어 2004년에는 지추 미술관이 설립되었다. ‘빛을 다루는 미술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여 모네가 그린 <수련 연못>의 연못을 오마주한 공간이 이곳에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2010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인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이우환 미술관’이 완공되었다. 이우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보며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을 추구하여 ‘집중’과 ‘여백’을 살린 미술관을 만들었다. 사유의 미술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세토 내해는 나오시마의 자연을 활용하여 건축물과 미술작품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후쿠타케 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다른 섬들도 예술을 매개로 살리고자 했다. 전문가들과 함께 세토 내해의 섬과 섬,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를 개최하였다.
■ 주인공이 섬과 주민인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2010년에 처음 개최되어 3년에 한 번씩 세토 내해에 있는 섬을 무대로 펼쳐지는 큰 규모의 국제 현대 미술제다. 첫 예술제에서는 ‘예술과 바다를 둘러싼 백일 간의 모험’을 주제로 18개국 75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93만여 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았다. 2013년에 열린 두 번째 예술제에서는 ‘예술과 섬을 둘러싼 내륙의 사계’를 주제로 다른 섬들도 추가하여 모두 열두 개의 섬에서 전시를 이어갔다. 그리고 세 번째 예술제는 ‘바다의 복권’을 주제로 총 34개국 226명의 예술가들과 108일 동안 현대 미술 축제를 벌였다. 이러한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통해 약 1,000억 정도의 경제 효과를 냈고, 세토 내해는 활력이 넘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나오시마섬 이에 프로젝트>
■ 현대 예술과 만난 세토 내해의 섬들
나오시마 섬 곳곳은 예술 작품으로 가득하다. 배를 타고 미야노우라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반겨주는 것은 거대한 호박이다. 설치 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다. 배에서 내려 골목길을 따라가면 공중목욕탕이 보인다. 위의 두 번째 사진이 바로 나오시마 항구 근처에 있는 아이러브유 목욕탕이다. 오래된 공중목욕탕이 ‘이에 프로젝트’를 만나 목욕탕이면서 동시에 포토존이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이끈다. 위의 두 사진은 모두 이에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태어난 집들이다.
일본어로 집을 뜻하는 ‘이에(いえ)’ 프로젝트는 1997년 나오시마 섬 혼무라 지구의 한 주민이 집을 기증하며 시작되었다. 이에 설치 미술가인 미야지마 다쓰오가 주도하여 집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전통 가옥을 예술가에게 제공하여 뮤지엄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낡은 집을 작품으로 만든 뒤 주민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지역에서 이 집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관찰하며 진행한 프로젝트이다. 마을의 집이 하나둘 개조되어 모두 일곱 채의 빈집이 작품이 되었다. 그러자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집 앞에 화단을 가꾸고 골목을 정비했고, 나오시마의 상징인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미니어처를 담장에 올려놓는 등 자발적으로 나오시마의 특색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 ‘고유성’, ‘지역’,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
나오시마는 도시재생은 기업가와 예술가의 손에서만 탄생한 게 아니다. 모든 과정에서 주민들의 도움과 참여가 늘 함께했다. 모든 프로젝트가 섬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존한 채, 미리 정해진 집 이외에는 개발을 자제하는 등 주민들의 입장에서 이루어졌다.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또한 어려운 현대미술이 아닌 섬 그 자체를 주제로 한 ‘지역 전체의 축제’였다. 바다와 섬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고유성’, ‘지역’, ‘공동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주민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며 후쿠타케 회장의 바람대로 주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예술은 ‘홍보 수단’이었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주민’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그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적인 도시재생의 중심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오시마로부터 배울 수 있다. 주민들이 지속 가능하게 삶의 터전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도시재생의 진정한 가치이고,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목표라는 것을 나오시마는 증명하였다. 이처럼 주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도시재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그리고 주민들이 있었기에 예술이 섬에 자리를 잡고, 예술이라는 매체를 섬 곳곳에서 함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주민 스스로가 애정을 가지고 스스로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안내하는 등 자발적으로 참여하였기에 나오시마 도시재생에는 이곳만의 색이 더 잘 묻어났을 것이다.
‘주민 참여형 프로젝트’라고 하면 매우 거창해 보이지만, 집 앞 화단을 가꾸고 그곳에 마을과 관련된 소품을 장식해 놓는 것부터가 주민 참여다. 각 마을에서 열리는 도시재생 대학에 참여하는 것도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의견을 더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주민들의 아이디어는 저마다 충분히 실현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우리 마을의 활력을 되찾고 싶을 때 ‘도시재생 대학’에 참여하는 일은, 작지만 소중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 「노인만 남아있는 섬에 천국(天國)을 만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