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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임동우(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기술혁명 춘추전국의 시대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꿈과 희망과 동시에 걱정과 우려가 난립하는 시대다. 한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이야기다. 이미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삶과 산업에 깊게 침투해있고, 자율주행자동차, 메타버스, ChatGPT 등 인류 사회를 뒤바꿔 놓을만한 개념과 기술들이 하루를 멀다 하고 따라가기 조차 힘든 속도로 계속 등장한다. 그런데 또 흥미로운 사실은 많은 이야기들이 기술과 산업에만 집중되어있다. 미래의 기술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할 것이고, 새로운 기술을 통한 새로운 산업이 어떤 기업과 분야를 가치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과 기대가 난무한다. 하지만 이 기술혁명 춘추전국의 시대에 우리의 도시가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해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산업혁명은 18세기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촉진되었다. 지금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마치 산업혁명이 단기간에 이룩한 어떤 특정시점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엔진의 발달이 폭발적으로 산업을 바꾸고 도시를 바꾼것은 19세기에 와서다. 물론 역사에서 100년의 시간이 매우 짧은 시간임에는 틀림없다. 아무리 시간의 속도가 빨라졌다고는 하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4차 산업혁명이 폭발적으로 이 모든 산업과 도시를 바꾸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는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갖게 된다. 지난 2천여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도시는 인구 1백만 도시였다. 그 시작은 우리가 잘 아는 고대 로마였고, 이후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중국의 서안이나 북경일 때도 있었고, 또 이스탄불일때도 있었고, 여러 도시가 성장을 하였지만, 그 어떠한 도시도 1백만 이상의 인구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것이 산업혁명을 통해 처음으로 1800년대 초반 런던이 200만 도시를 달성한다. 인류역사의 신기록이다. 2천년 동안 깨지지 않은 기록이었다. 그렇다면 런던은 언제 200만을 넘어섰을까. 200만을 달성한지 불과 50년만에 500만 도시가 된다. 그렇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도시화가 이렇게 무섭다. 2천년동안 인구 100만 늘리는게 그렇게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인구가 200만에서 500만으로 두배 이상 뛰는데도 5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럽의 산업도시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였다.
급속한
성장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전까지는 없었던 “도시화”로 인한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인구의 과밀은 위생의 문제를 야기했고, 끊임없이 생겨나는 굴뚝산업들은 도시를 병들게 하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부의 가치를 생산하던 시기의 이면에는 병들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 있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여러 도시모델의 대안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특히 산업화가 완성화되어가던 20세기 초반에는 새롭게 등장한 교통수단들, 기술들, 도시의 새로운 용도 등을 고려한 도시 모델들이 등장하였다. 당시 제안된 모델들은 다양했지만, 몇 가지의 공통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도시에 더 많은 녹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주거와 공업같은 용도는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 건축의 경우에는 산업화된 방식으로 더 고층 고밀도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공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도시모델이라고 하는 것이 늘 그렇지만, 이것이 바로 적용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 도시의 모습을 보면 100년 전 건축가들이 제안한 도시모델의 많은 부분이 적용되어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100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그 동안 사회가 변하였고 기술이 진보하였고, 문화와 소비패턴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도시모델도 조금씩 바뀌어나갔다. 그 중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가 그 동안 현대 도시는 생산산업시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시기 도시는 생산공장을 통해 발전하였다. 공장이 곧 일자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 수 밖에 없었고, 사람이 몰려든 도시는 더욱 더 성장하였다. 하지만 포디즘을 필두로 하는 대량생산 체계는 더 이상 도시 안에 존재하기 힘들었다. 전례없는 크기의 공장들과, 이를 위한 물류체계, 공업용수 등이 필요했고, 따라서 이들 공장은 새로운 지역을 찾아 떠나야했다. 그리고 서비스 산업으로 대표되는 3차 산업이 도시의 주된 산업군을 형성하며 도시는 생산의 도시에서 소비의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따라서 20세기 중반부터는 대도시는 생산도시가 아니라 소비도시라는 공식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고, 생산산업은 그 지방의 도시나 다른 국가에서 일어나는, 즉 소비도시와는 별개의 도시로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21세기는 다르다. 여전히 대량생산 모델이 주를 이루지만, 그 안에서도 매스커스터마이제이션과
소량생산품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20세기는 획일화된 제품으로 대량생산화를 이루었지만, 기술의 진보와 소비가치의 변화로 더 이상 남들과 똑같은 제품들만이 소비되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이 둘이 함께 공존하는 시대다. 그리고 더 이상 굴뚝산업만이 생산의 방식인 시대가 아니다. 3D Printer나 CNC, 로보틱스 등의 발달은 지속적으로 클린산업을 성장시키고 있다. 또한 소셜미디어등의 플랫폼의 발달은 더 이상 기존 유통망을 통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SNS를 통해 직접 유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생산자와 소비자는 전례없이 가까워지고 있다.
막연한 현상이 아니다. 실제로 아디다스는 여러 공장을 철수하고 본국인 독일의 도시들로 다시 생산공장을 옮겼다. 유니클로는 도쿄내에 작은 공장을 새로 만들어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소규모생산방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브랜드뿐 아니라, 여러 로컬 브랜드 등도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한 맥주회사가 빈에 로컬 공장을 만들어 로컬브랜드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싸게가 모토였던 20세기의 산업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가 그 동안 따르던 도시 모델이 유지되는 것이 맞을까. 지역순환경제를 위하여 지역생산과 지역소비가 강조되는 이 시기에 효율성이 높다는 이유로 동떨어진 곳에서 대량생산을 유도하던 도시모델이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혹은 이제 더 이상 굴뚝산업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생산이 가능해진 시대이기 때문에, 새로운 도시 모델을 통해 이들 산업을 다시금 도시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모델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이 맞을까. 이제는 도시가 더 화려한 성장을 하고 몇 만도시가 되고, 이런 것이 가치있다고 인정받는 시대가 아니다. 지난 코로나 시대와 경제 위기, 전쟁으로 인한 여러 불안정한 정세를 겪으며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탄력적이고 회복력있는 도시가 경쟁력있는 도시라는 것이다. 인구가 100만이어도 탄력성이 없으면 인구 10만인 도시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탄력성은 지역의 순환경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외부의 요인에 의존하는 비율을 낮춘 도시가 탄력성있고 회복력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여러 이유로 인하여 생산시설은 우리 도시에서 그렇게 환영받지 못했다. 소득과 일자리를 위하여 산업을 유치하는 것은 찬성하더라도 내가 사는 곳 옆에 생산시설이 존재하는 것은 용납하기 힘든 것이 그동안의 문화였고 도시모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새로운 산업혁명은 더 이상 생산이 기피시설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문화시설이고 소비시설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컬브랜드는 로컬의 힘을 키운다. 이제는 오히려 이 로컬브랜드의 생산시설을 갖고 있는 도시와 동네가 경쟁력을 갖춘다. 그리고 순환경제를 통해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새로운 도시모델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100년이 넘은 기존의 가치관과 기존의 도시모델은 이미 지난 기술과 지난 사회만을 반영하고 있다. 일예로, 스타벅스에서 도쿄에 스타벅스 로스팅팩토리를 지었을 때, 이것이 팩토리라는 이유만으로 도쿄의 준공업지역을 찾아서 지어야 했던 일화가 있다. 비단 글로벌 기업의 얘기만이 아니다. 서울의 많은 동네에서 로컬브랜드 막걸리를 만들려고 하는데, 서울에 이러한 공장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곳은 준공업지역인 성수동과 문래동밖에 없다. 성수동 입장에서야 로컬브랜드가 있어 좋지만, 다른 동네에서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새로운
생산도시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다. 다시금 도시 안에 자동차 생산라인을 짓자는 말이 아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될 수 있는 로컬 제품 등의 성장을 유도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순환경제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도시가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규제의 완화, 그리고 새로운 건축 유형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100년전 도시 모델이 나올 때 그 어떤 것도 기존의 것이 없었다. 건축은 새로웠으며, 법과 규제, 정책 모두 새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하나씩 준비해왔고, 그 틀 안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할 때이고, 더 이상 서양의 도시모델이 아닌, 산업화(industrialism)와 탈산업화 (post-industrialism), 그리고 신산업화 (neo-industrialism)이 모든 것을 반세기 조금 넘는 시간에 압축적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하고 있는 한국의 도시들이 새로운 모델을 적용시켜나가기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대구에서 진행되는 대구 도시설계 글로벌 스튜디오는 신산업시대를 준비하는 대구의 노력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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