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여관’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이곳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역사적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현장으로, 2004년에는 그 역사적·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속 ‘남도여관’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보성여관’은 TV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 소개된 뒤 더욱 유명해졌다. 보성여관은 2008년부터 약 4년에 걸친 복원 사업 끝에 역사 전시장, 카페, 문화 체험 소극장, 숙박시설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보성여관을 복원하고 관리·운영하는 곳이 문화재청이 아니라 문화재청이 문화재 관리 단체로 지정한 ‘특수법인’이라는 사실이다. 그 단체는 바로 민간의 참여로 운영되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이다.

<보성여관 전경>

출처: 보성여관 홈페이지

‘신탁’이란

신탁의 사전적 정의는 “위탁자가 특정한 재산권을 수탁자에게 이전하거나 기타의 처분을 하고 수탁자로 하여금 수익자의 이익 또는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그 재산권을 관리·처분하게 하는 법률관계”이다. 그중에서도 ‘국민신탁’은 국민(개인, 기업, 단체)의 기부·증여 등을 통해 위탁받은 재산·회비 등을 활용하여 보전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자연유산 등을 취득하고, 이를 민간 차원의 자발적인 참여 방식으로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운동을 가리킨다.

미국, 영국 등 신탁 선진국의 국민신탁 역사는 백 년을 훌쩍 넘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연보호 민간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도 1895년 영국 전역의 문화재 관리를 위해 설립된 국민신탁에서 출발한 것이다. 영국은 1907년에 세계 최초로 ‘국민신탁법’을 제정하여 ‘아름답거나 역사 가치가 있는 중요한 토지(자연)와 건물을 영구히 보존할 것과 취득한 목적물의 양도 불능의 원칙’을 수립하여 국민신탁 운동을 법제화하였다. 오늘날 영국은 해안선과 녹지, 역사적 건물 등을 포함하여 전 국토의 약 2.7%를 신탁지로 확보하여 보전·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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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신탁의 원리>

출처: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 홈페이지

문화유산국민신탁 설립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반 특정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보전을 위해 시민 성금 모금의 형태로 국민신탁 운동이 이루어졌다. 이어 ‘그린벨트 해제 반대 운동’을 계기로 삼아 2000년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가 출범되었다. 이는 민간 차원에서 처음으로 국민신탁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2006년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약칭: 문화유산신탁법)’이 제정되어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신탁 운동을 육성·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고, 2007년 문화재청의 감독 아래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설립되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국민·기업·단체·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기부·증여받거나 위탁받은 재산과 회비 등을 활용하여 보전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취득하고 보전·관리한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수행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의 주요 활동>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앞서 소개한 보성여관 이외에도 이상의 집, 동래 정씨 동래군파 종택, 윤경렬 옛집, 덕수궁 중명전 등을 보전·관리해오고 있다. 또한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 답사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시민들의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데도 이바지하고 있다.

십시일반(十匙一飯), 문화유산 지키기

문화유산국민신탁의 보전 자산 1호는 서울 종로 통인동에 위치한 ‘이상의 집(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7길)’이다. 이곳은 본래 옛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는 이유에서 등록문화재에서 해제되었고, 개발로 인해 훼손될 위기에 처했으나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민간 기업의 후원 참여에 힘입어 건물을 매입하면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문화재 지킴이 협약 기업의 후원을 통해 보수공사를 진행하여 2018년 단장을 마치고 문화 체험 및 전시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매입·복원·운영에 이르기까지 시민들과 민간 기업의 후원으로 진행된 뜻깊은 사례이다.

<이상의 집>

출처: 문화유산국민신탁 홈페이지

이처럼 전국 곳곳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파괴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들이 많다. 우리가 이러한 공간에 관심을 갖고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함께 힘을 모은다면,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더 많은 문화유산들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를 손수 지키고 가꾸는 의미 있는 일이 많은 시민들에게 더욱 널리 알려지고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1. 문화유산국민신탁 홈페이지, https://nationaltrustkorea.org/

2. 보성여관 홈페이지, https://boseonginn.org/

3.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 홈페이지, https://nationaltrust.or.kr/

4. 박상현, ““천재시인 숨결 느끼도록”...종로구 이상의집 재개관”, 『연합뉴스』, 2018.12.19.